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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짧은 생각

막장이어도 내가 ‘미즈넷’에 가는 이유

by 영글음 2011. 2. 15.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고 한다. 남들은 그걸 또 도덕론이라 불렀단다. 그다지 철학에 심취한 아줌마가 아닌지라 데 오빠가 통제할 방법을 찾았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았다면 나 좀 알려 주지.

 

머리로는 밥하고 청소하고 책 읽고 서평 써야 한다고 빠삭하게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 속일까,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만 펼치면 머릿속 지우개가 작동하여 현실을 잊고 들어가는 곳이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운영하는 <미즈넷>. 모바일용 화면으로 보면 <다음> 초기 화면에 뉴스가 몇 줄 뜨는데, 그 옆 FUN이라는 카테고리를 누르면 맨 첫 줄 미즈넷 게시판 제목이 한 줄 뜬다. 그것만 읽어도 다음 내용이 얼마나 궁금해지는지! 제목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클릭, 클릭, 클릭! 완전 자동이다.

 

미즈넷은 여성포털 커뮤니티 사이트로 여성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얻고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다. 컴퓨터 큰 화면으로 들어가면 나름 유익한 정보도 얻을 수 있으련만, 스마트폰으로는 오로지 미즈토크에만 가게 된다. 그곳은 주로 자기가 직접 겪은 열 받은 사연을 올려 하소연하거나, 잘잘못을 가려달라 심판을 구하는 곳이다. 주제는 대개 남편 혹은 부인이 바람 난 이야기, 기가 막혀 뒤로 꼴딱 넘어갈 시댁이야기가 차지하고 간간히 그 외의 이야기도 올라온다.

 

 

글을 읽다 보면 막장이 따로 없다. 주위 친구들에게서는 전혀 들어볼 수 없는 개념 없는 집안도 무지 많고 부인, 남편, 아이까지 두고 다른 사람과 정분이 난 이야기는 왜 그렇게 다반사인지,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의 오지랖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줄줄이 달린 댓글에는 입에 담기 어려운 상스러운 단어가 나오는가 하면 소설 냄새가 난다는 둥,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는 둥 이래라 저래라 친절한(?) 조언도 담겨 있다.

 

가끔 짜증도 난다. 그게 싫으면 안 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미즈넷에 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할 일 없어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닌데. 게시 글 당 몇 천, 몇 만의 조회수는 뭘 의미하는 걸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곳에 가서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얻는 게 있긴 있을까? 이성과 행동이 따로 노는 나를 보며 한동안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생각 끝에 가만히 결론을 내리니, 어이 없게도 나는 내 행복을 찾으러 그곳에 갔었던 것 같다. 벼랑 끝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아직 평지에 서 있다고 안심하는 모양새랄까. 읽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시댁 이야기에 나는 시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아 행복했다.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는 남편 이야기에 그래도 새우 눈 뜨고 보면 현빈 같아 보이는 다정한 남편이 있어 좋았다. 내 삶에 돈이 없다는 게 큰 걸림돌이긴 하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지금보단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고 여전히 솰라 솰라 주문을 외우고 있긴 하다.)

 

내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도 절대적 행복을 느끼는 강인한 사람이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심지가 굳지는 않은가 보다. 남들 복장 터지는 사연을 보며 그래도 나 정도는 행복하다고 나를 합리화시키고 있으니 인간이란 참 강하면서도 나약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내가 남이 아니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욱 심각한 사연을 보며 위안을 받는 건 아닐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 상황은 오히려 낫구나 하면서 말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김혜남 전문의는 합리화가 성숙한 방어기제의 하나라고 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억압하고 회피하고 퇴행, 부정, 공격성의 자기에게로의 전향 등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쓰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조건이 약해도 만족하며 합리화를 시키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며 나는 미즈토크에 가는 이유에 대해 또 한 번 합리화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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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드라마 보는 느낌으로 그곳에 가는 아줌마 근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