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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설탕이 약으로 쓰일 때가 있었다고? [설탕의 세계사]

by 영글음 2011. 2. 8.

설탕에게도 조오은~ 시절이 있었단다. 결핵치료제, 해열제 같은 약재로서 대접을 받았는가 하면 가격이 무척 비싸 상류계급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던 화려한 때 말이다. 오늘날 비만과 성인병, 충치 등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설탕, 옛날이 좀 그리워질 만도 하다. 미움을 받아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 입 속에 들어가는 행운을 누리지만 말이다

 

[설탕의 세계사, 가와기타 미노루, 장미화 옮김, 좋은책만들기]는 설탕의 탄생과 위상, 대중화 등 설탕에 관한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게 꼭 설탕 이야기만은 아니다. 정확히 콕 집어 말하자면 설탕을 매개로 한 세계 인류의 역사이다. 입에도 잘 붙지 않는 왕족 이름과 연도를 들먹이며 배우는 역사보다는 식품을 통해 접한 역사가 신기하게도 훨씬 재미있고 쉽다.

설탕의 원료는 사탕수수나 사탕무이다. 사탕무는 비교적 근래(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으니 오랜 시간 설탕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사탕수수를 키워야 했다. 그런데 사탕수수를 재배하려면 적당한 강우량과 온도가 필수, 또한 제당 가공과정을 거치기 위해 중노동이 필요하다. 16~17세기에 약재나 식량, 건축자재, 연료 할 것 없이 새로운 유용식물에 눈이 먼 유럽각국이 앞다투어 카리브 해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을 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탕의 역사=노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설탕은 주로 카리브 해에서 생산되었지만 그를 위한 노동력이 된 흑인노예는 아프리카에서 공급되었으며 생산된 설탕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므로 설탕의 역사는 세 대륙을 동시에 시야에 두지 않으면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180p)"

역사학자인 저자 가와기타 미노루는 상품을 통해 살펴본 역사는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했다
. 설탕과 같은 세계상품의 경우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을 좇아가다 보면 세계의 여러 지역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알 수 있다고. 실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설탕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16세기에는 열병, 기침, 가슴병, 위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설탕이 점차 어떻게 귀족들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는지, 차나 초콜릿, 커피 등과 만나 어떤 문화를 만들어 냈는지 읽다 보면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유럽 왕후귀족 연회에 설탕 데커레이션이 등장했는데 마지막에는 반드시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이 데커레이션을 부숴 남김 업이 나눠 먹었다(71p)는데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라. 귀족들 입가에 붙은 설탕가루가 침과 녹아 어우러져 있었을 모습을 떠올려 보면 헛웃음이 절로 난다

[설탕의 세계사]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책이다. 중간마다 설탕 제조 과정이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의 노동 장면을 엿볼 수 있는 삽화까지 곁들여져 부담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정도라면 조금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걸 보면 짧은 분량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

 

설탕의세계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 교양세계사
지은이 가와기타 미노루 (좋은책만들기,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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