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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짧은 생각

비오는 날 버스 안에서 날아다닌 난상들

by 영글음 2010. 9. 15.

뉴욕 가는 버스 안이다. 어느 곳에 가든 대부분 자가용으로 운전해서 가야하는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것은 그 자체가 일탈이자 여행이다. 오랜만의 일이다. 방랑벽이 있는 나는 그저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비록 내일이면 다시 같은 길을 돌아와 일상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단지 오늘이다. 
 





가을을 알리는 빗방울이 창을 타고 주루룩 미끄러진다. 구름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하늘과 구름의 경계가 없다. 목장이며 집들은 거짓말처럼 나왔다 사라지며 등뒤로 등뒤로 물러난다. 간간히 나무 사이로 보이는 노란 옥수수 밭, 수확의 계절을 확인했다. 쾌청한 날씨여도 좋았겠지만 혼자 떠나는 길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꽤 즐길 만하다.



길가에 이름 모를 잡초는 줄기 끝에 진하고 노란 꽃으로 치장하고 나와 무리지어 서 있다. 물기 때문에 촉촉해진 창으로 꽃을 바라보니 포토샵으로 처리를 한 듯 뭉근하게 범벅이 되어 있다. 그나마 그렇게 떼를 지어있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을 것 같은 풀들이다. 

산과 들은 아직 푸른빛이 대부분이지만 공기가 벌써 가을이다. 가을의 산소, 가을의 질소, 가을의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 각종 가을 매연을 머금은 가을 공기가 선선하니 좋다. 그래도 붉게 물들려고 채비를 하는 나무들이 있다. 아직은 붉은 색을 띄우지 못하고 초록과 황토, 주황이 어설프게 섞인 묘한 색이다. 나는 그런 색깔에 '초황색'이라는 말을 지어 붙이고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건너편으로 자동차를 열대 정도 실은 대형 트럭이 지나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 불안하다. 끝 없는 경기침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모습이 저렇진 않을까. 행여 저런 차와 박으면 인생 골로 가겠다 싶기도 하다. 차 열대 값을 어찌 물어내나.

버스가 고속도로 진입구에 섰다. 몇달 전 똑같은 길을 간 적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해서 다른 도시로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려고 좌회전을 했는데 아뿔싸, 모든 차들이 출발 정지선에 서서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나보다 더 큰 눈을 뜨고 황당해하는 운전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미국 고속도로는 상향길과 하향길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길도 그랬던 것이다. 시골이었고, 급할 건 없었고, 차도 많지 않았고 여러 모로 다행이었지만 급히 후진하여 다음 좌회전 앞에 섰을 때 내 심장은 쿵쾅쿵쾅 신나게 비트박스를 때리고 있었다. 뉴욕 가는 버스는 부드럽게 고속도로에 진입, 성공했다. ^^;;



가방에는 한 시간 전 내린 커피가 머그병에 담겨 있고 남편이 양보해준 쿠키도 몇 조각 들어 있다. 
뉴욕까지 5시간, 배가 고파지면 그들과 만나면 된다. 무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