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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우리는 사랑일까] 도표가 있는 독특한 심리연애소설

by 영글음 2010. 9. 2.
끝내주는 분위기, 황홀한 음식에 도취되는 여자.
유명한 레스토랑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여자.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의 주인공 앨리스는 후자 쪽이다. 자신이 느끼는 마음보다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앨리스는 런던에서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24세 아가씨이다. 그녀는 어느 파티에서 운명처럼 에릭을 만난다. 그는 자기 일에서 성공하고 미남인데다가 완벽해 보이는 남자다. 소설은 앨리스가 에릭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하며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진실한 사랑 찾기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끝난다면 일반 연애소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소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묘사하는 주인공들의 세세한 심리에 있다. 연애를 하는 남녀는 때때로 미묘한 심리의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진심과 정반대로 나오는 말 한마디에 당혹해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것이 상대방인지 사랑 자체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도표와 그림까지 이용하며 남녀의 마음 상태를 명쾌하게 풀어간다. 소설이지만 심리서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앨리스의 소망은
자동응답기 실수라는 현상을 통해서 드러났다” (341p)

후반부 앨리스는 새로운 남자친구 필립에게 마음이 끌린다. 에릭과 사귀면서 다른 상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한 앨리스는 관심을 끄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 쳐도 심리의 본질은 드러나기 마련. 작가는 진심이 드러나는 과정을 ‘자동응답기 실수’라 명명했다.

자동응답기가 나오게 된 배경, 작동 원리, 특히 주체의 무의식을 파악했던 프로이트와 자동응답기의 관계에 대해 작가는 지면 한 장 이상을 할애하며 설명한다.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음성을 보고 필립이 남긴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앨리스의 진심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는 이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독자보다 먼저 속단하지 않고 왜 그런 심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설명하는 작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작가가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덕인지 소설 곳곳에는 철학가, 예술가들의 사상과 문예사조가 등장하며 남녀의 심리묘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무릎을 치며 “이건 완전 내 얘기군.” 혹은 “그래서 내 애인이 그랬던 것이군.”하며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본문에 괄호 속 부연 설명 문구가 남발하는 까닭에 문맥이 흐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편집자와 옮긴이까지 힘을 합쳐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예를 들어 볼까? 첫 번째 장은 전체 분량이 여덟 쪽인데 작가 괄호가 5개, 편집자 괄호 1개가 있다. 둘째 장은 전체 아홉 쪽에 작가 괄호 2개, 옮긴이 괄호 2개, 셋째 장은 열 세 쪽 분량에 작가 괄호 6개,  옮긴이 괄호 1개가 있다. 총 30쪽 본문에 자그마치 괄호가 17개가 등장한다. 괄호의 홍수를 줄인다면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대폭 줄 것 같다. 친절함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사랑일까>는 고리타분한 연애소설에 질린 사람이나 지금 막 연애를 걸고 싶은 상대의 마음이 알쏭달쏭해 궁금해 죽겠는 사람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은 소설이다. 유쾌한 연애술사 알랭 드 보통이 이끄는 흥미로운 심리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