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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과격파 운동권 출신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 [남쪽으로 튀어]

by 영글음 2012. 2. 9.
 


 

[공중그네]에 이어 두 번째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 역시 기대 이상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상쾌, 유쾌, 명쾌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분명 오쿠다의 큰 장점이다. 이 책까지 읽고 나니 저절로 그의 팬이 되었다.

 

도쿄에 사는 주인공 지로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좀 독특하다. 글을 쓴답시고 집에만 틀어박힌 채, 애들은 학교 다닐 필요가 없고 국가가 해준 게 없으니 국민연금 따윈 못 낸다는 안하무인이다. 공무원만 보면 쌍심지를 켜고 목소리를 높이는 아버지가 지로는 늘 부끄러웠고 그런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지로의 어머니, 아버지는 과격파 운동권 출신, 그것도 전설의 투사였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남쪽 섬마을로 이사가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버려진 집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고기 잡으며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동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너나 없이 물건을 나누며 네 집이 내 집인 양하는 마을 사람들, 재개발을 이유로 지로네 가족을 쫓아 내려는 기업과 그에 맞선 투쟁(?!)…… 그러면서 해체되었던 가족이 뭉치고 서로를 이해한다.  

 

혼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 없는 거야. 돈이 없어도 모두가 콘스턴트하게 가난을 즐기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까?” (226p)

나는 이 구절이 오쿠다 히데오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얼마 전 읽은 책 <살림의 경제학>에서 강수돌이 말했던 경제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고 조금 벌어도 씀씀이를 줄이며 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살림의 경제 말이다. 우주 만물천하가 연결되어 있듯 책끼리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무척 설렜다. 두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된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낙원을 추구하며 자급자족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던 지로네 아버지, 어머니는 희망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제 내 마음 속 남쪽을 찾을 차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