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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환불이 잘 되면 꼭 소비자만 좋을까?

by 영글음 2011. 2. 22.

벌써 1년 반 전 이야기네요. 미국에 온지 1주일 정도 되었을 때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월마트에서 가장 비싸다는 자전거로 218불 짜리였지요. 남편이 학교 갈 때 타고 다니겠다고 해서 큰 맘 먹고 샀던 것인데 기아를 바꿀 때 약간 문제가 있다고 했었어요. 실제 4, 5번 정도 탄 자전거였습니다.

 

“여긴 겨울 되면 눈이 많이 와서 자전거 타기 힘들다던데 그냥 환불할까?

“근데 한 달이나 타서 반품이 될까 몰라. 교환이라도 해주면 다행이겠다.

“한 번 들고 가보기나 하자. 안되면 할 수 없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월마트로 향했습니다. 차례를 기다린 후 남편이 직원에게 자전거를 보여주며 기아가 좀 이상하다고 설명을 하니 우선 수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합니다. 남편은 안장이 높은 편이라 환불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OK! 하면서 현금으로 자전거 값을 돌려주었습니다. 한 달 전에 산 자전거를 환불받는데 3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미국 대형매장은 ‘묻지마 환불’ 천국

 

좀 살아 보니 미국은 환불받기가 참 쉽습니다. 대형 마트나 쇼핑몰은 영수증만 보여주면 일정 기간 내에 산 물건을 환불받을 수 있답니다. 월마트의 경우 90일입니다.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 백화점은 7~14일 이내인 경우가 많고, 마트는 한달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월마트의 Custormer Service Center. 직원이 반품된 물건을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 카트 모두 반품 제품. 

 

한국은 환불을 해준다손 치더라도 물건에 이상이 없는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빠진 부품은 없는지 꼼꼼히 살핀 후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돈을 내어줍니다. 특히 고객의 단순 변심에 의한 반품은 잘 해주지 않습니다때로는 돈을 돌려 받는 대신 그 금액만큼 Keeping했다가 나중에 다른 물건을 살 때 쓰기도 하는데 이것도 사용 기간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맘에 들지 않는 물건을 산 경우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옷 매장 직원은 반품하려는 저에게 울상을 지으며 가녀린 목소리로 신파극을 펼치기도 했지요.

 

“손님, 이 옷 정말 잘 어울려요.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그냥 입으시면 안 될까요?

 

마음이 약한 저는 환불하려고 갔다가 그냥 들고 온 경우도 몇 번 있었답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저러해서 환불하고 싶다고 하면 영수증 확인 후에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은 열어보지도 않고 물건 있지? 묻더니 바로 현금을 쥐어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 뭣 때문에? 어떻게 해서? 이다지도 환불을 잘 해준단 말이냐. 한동안 제 호기심은 거기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미국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환불 보험 같은 게 있진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월마트에게 메일을 보내다

 

보험? 그럴까? 정말 보험이라도 든 것일까?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월마트닷컴에 들어가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월마트를 자주 이용하는 고객이다, 당사의 환불규정(Refund Policy)이 매우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환불이 쉬울 수 있냐? 보험이라도 든 것이냐? 고객이 환불한 물품은 어떻게 처리되느냐? 등등……

 

안 되는 영어로 메일을 보냈는데 다음날 답변이 왔습니다. 보험을 들었다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대신 제조업체와 월마트 규정에 따라 고객 편의를 위해 환불을 할 수 있으며 각 유통별로 어떻게 하면 환불받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답니다. 반품된 물품은 우선 Return Center로 가는데 고객의 변심 때문인 경우 이상이 없는지 체크해서 다시 매장으로 간다고 했지요. 제가 한번 쓴 물건이 다시 진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음 고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저 또한 누군가가 썼던 물건을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100% 원하는 답변을 듣진 못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미국은 한국의 구멍가게 같은 작은 매장보다는 대형매장이 많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형매장은 주로 유통매장이지요. 월마트(Walmart), 코스트코(costco), 베스트바이(Bestby), 타깃(Taget) 등 모두 자체 브랜드 제품보다는 여러 회사의 물건을 납품받아 고객을 유혹하는 곳입니다.

 

그런 즉, 환불이야 유통매장의 규정에 따르겠지만 그 손해는 매장이 아닌 업체에게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업체가 입점할 때는 그런 환불규정까지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들어오겠지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업체에서 제품에 가격을 매길 때 환불비용까지 다 생각해서 책정하기 때문에 미국이 물가가 비싼 것이라고요. 또 환불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물가가 계속 올라간다고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

얼마전 [월마트 이펙트, 찰스 피시먼, 이상미디어]라는 책이 출간되었더라고요. 저자는 미국 전체 소매업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월마트에 대해 다각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최저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제 3세계 노동자들은 노동을 착취당한다는 내용이 있다는데, 묻지마 환불정책도 한 몫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환불제도가 소비자보호만 할까

 

얼핏 환불제도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제도로만 보입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오늘은 이것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물건도 내일 보면 왜 샀을까 후회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주부들은 그럴 때 무지 많습니다. 단순 변심이라 하더라도 곱게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준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참 좋을 일입니다. 몇 날 며칠 사용하여 다시는 팔지 못할 물건을 반품하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은 당연히 빼야겠지요. 

 



그런데 가만 보면 환불이 잘되면 소비를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와서 초기 정착 비용이 꽤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짐을 보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장기간 살 생각을 하니 없는 게 많았습니다. 이것저것 중고로도 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월마트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한창 물건을 사서 집으로 나를 무렵, 살까 말까 고민이 되는 물건이 있으면 남편과 저는 외쳤습니다.  

 

“우선 사자! 나중에 맘에 안 들면 반품하면 되잖아.

 

그래서 일단 삽니다. 룰루랄라 집에 들고 옵니다. 개중에는 정말 맘에 들어서 계속 사용하는 것도 있는데 일부는 괜히 샀다고 후회하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없으면 없는 데로 살지만 있으면 아주 편리할 것 같은’ 물건이 너무나 많았거든요. 주부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이디어 상품이라고나 할까요?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물건이 생겼을 때, 가격이 비싸다면 바로 환불했습니다. 그런데 10불 이하의 물건들은 집안 구석에서 뒹굴다가 저도 모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무지 많았답니다.

 

간혹 ‘맛없으면 전액 환불!’을 써 붙인 식당이나 ‘무료 체험의 기회! 써보고 맘에 안 들면 환불 가능’을 외치며 홈쇼핑에서 물건을 파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런 곳이 착한 기업이어서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그랬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지만 환불제도라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매출을 올리는 판촉수단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환불하는 것은 사실 피곤한 일입니다. 물건을 다시 차에 실으랴, 마트까지 이동하랴, 서비스 센터에서 기다리랴, 안 되는 영어로 설명하랴……. @#$%^&* 환불 잘 되니까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것보다는 필요한 것만 현명하게 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시간도 돈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