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런저런 이야기/짧은 생각

서른 넷 주부,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는 이유

by 영글음 2010. 7. 1.
서른네 살. 나는 서른네 살이다.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은 줄도 모르고 두어 달 전에는 남편과 내 나이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나는 내가 ‘만으로’ 서른셋이라 했고 남편은 서른넷이라 했다. 이런 젠장, 나이를 계산하는데 계산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남편이 이겼다. 미국에 온지 1년, 한국과 미국은 나이를 세는 법이 달라 여태껏 내가 ‘삼땡’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2009년 연말이 결코 연말 같지 않았던 것도 핑계라 해두자. 어쨌건 나는 서른네 살의 주부다.

남들이 서른을 앞에 두고 뭣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 없이 불안해할 때 나는 내 서른이 행복했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순간, 옆에는 비록 가난했지만 평생을 함께 할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랑 전세 갚을 돈으로 6개월 동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 곳곳을 돌면서 참 즐거워라 했다. 여행하느라 때려치웠던 직장도 새로 구해서 들어갔으니 이만~ 하면 꽤 근사하지 않나 생각하며 만족했었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을수록 긍정의 힘이 사라져 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있다가 없다가 꼭 미친년 널 뛰듯 한다. 6년 전 이맘 때 쯤 남편이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인생 뭐 별거 있나 “내가 돈을 벌 테니 너는 하고 싶은 거 해라” 그러면서 쿨하게 받아들였다. 삶의 목표가 돈은 아니었으니까. 집, 차 같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게 행복이라 생각했으니까. 같이 사는 남자가 그토록 공부가 하고 싶다는 데 내가 못할 거 네가 대신해서 집안을 빛내다오~! 울트라 코믹에 감동까지 섞인 드라마였다.

남편은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나는 졸지에 ‘워킹 우먼’에서 유학생 와이프가 되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산다. 딸내미도 하나 있으니 동화책도 읽어주고 동요도 부르고 때로는 아이랑 꽃게 춤도 춘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 노래를 불렀던 내가 미국 산골 촌구석에 와서 산과 들과 나무와 온갖 짐승이 뒤뜰로 찾아오는 곳에 사니까 좋긴 한데, 당장 좋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4년은 더 공부해야 하는데 통장 잔고는 점점 줄고 그나마 있는 돈도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하루 7시간은 자유의 몸.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건 축복이자 고통이다. 남편 공부가 잘 풀려 몇 년 후 박사가 되었을 때, 그 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골이 제대로 쑤신다.

지나온 날들과 내가 선 현재를 되짚고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한계를 깨닫게 된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 말이다.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도무지 어떤 글을 어떻게 어디다 써야할지 막막해질 때, 남들은 멋진 글 잘만 쓰면서 인정받고 사는 거 보면 무지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다. 지금의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걸까. 젊을 땐 능력 이상의 꿈을 꾸어도 언제나 내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점점 현실을 바라보게 되고 내가 가진 재능의 경계를 알아버린다. 한계를 인정하는 건 참 아픈 일이다…….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한 필기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그 공책이 싫어졌다. 그래서 뒷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도 새 공책을 펼쳐 첫장부터 다시 글씨를 쓰곤 했다. 물론 엄마에게 걸리면 죽음이었지만. 물자를 낭비하는 일은 혼나도 싸다. 그런데 나는 서른 넷의 나이에 같은 일을 반복하려 한다. 돈이 들지 않기에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내가 새 블로그에 둥지를 트는 이유이다. 인정할 건 하더라도 이번엔 좀 솔직해질 수 있을까? 꾸미지 않고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생각을 펼치고 싶다. 만약 더 깨져야 한다면 한번 그래 보겠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